가문을 빛낸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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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 부훤공 휘 기준 약전

약  전

행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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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字)는 부선(孚先), 호(號)는 부훤(負暄)이다. 명종 을묘(1555년) 10월11일 청강공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출생 하셨다.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세마(洗馬) 붕남(鵬南)의 따님이요 영의정 진(震)의 손녀이시다.

 

기묘년(1579)에 진사시 입격, 경진년(1580) 별시 문과에 급제하시어 승문원에 선보(선발보직)되었다가 계공랑 승문원 부정자 직에서 별세하시니 공의 나이 겨우 29세이시었다.

 

계미년(1583)에 청강공께서 북병사로서 오랑캐가 북경을 침범하는 란을 만났을 때에 청강공의 재덕을 시기하는 자들의 모함에 빠져 마침내 옥에 갇히게 되니, 공이 신들메를 하고 옥 근처에 빈집을 세내어 혼자 거처하면서 하루 한 끼 밥을 먹으며, 사람을 대하여 청강공의 사연을 이야기할 때 에는  눈물이 앞을 가리니 보고 듣는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여 눈물을 머금지 않는 이 가 없었다. 마침내 청강공께서 서쪽변방(인산진)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니 공께서 문을 닫아걸고 세상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지내던 중,  하루는 집안사람들과 청강공께서 누명을 쓰게 된 시말에 대하여 이야기 하던 끝에 눈물을 흘리며 피를 토하더니 그 이튼날 아침에 세상을 떠나시니 계미년(1583년) 6월 초8일로 청강공께서 별세하시기 4개월 전이다.

 

상촌 신흠이 지은 묘갈문에 이르기를 공께서는

「모습과 행동이 시훤하고 훤칠하여 바라보면 뚜렸한 느낌을 풍겼으며 시에 능하고 궁마에도 재주가 있는데다가 사무능력까지 겸하였으니 진실로 만능재주를 겸비한 재사이시다. 또한  성품이 굳세고 높으며 청렴결백하여 기개와 의리가 생활 신조였으니 다른 사람의 착한 행실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곧 자기의 스승으로 삼고, 다른 사람의 나쁜 행실을 보면 자기의 원수처럼 대하여 면대에서 침을 뱉을 정도였다.」라고 칭하시니 능히 공의 심성과 청렴한 기개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년(1624)에 둘째 아들 습정공(諱 厚基)께서 정사원종 일등공신으로 녹훈되시어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예문관 직제학 상서원 정으로 증직되시고 丁亥年(1647)에 둘째 손자 서화공(諱 行遠)이 의정부 우의정에 제수되시어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崇祿大夫 議政府 左贊成)에 추증되시었다.  배위는 증 광주김씨로 監役 익휘(益輝)의 따님으로 증 정경부인이시다,  묘소는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로 양위 합폄(合窆)이시다.

 

상촌 신흠이 묘갈문을 짓고 명(銘)을 엮으니 다음과 같다.

밭에도 골이있고 두둑이 있듯시

잘되고 못되는 것 언제나 있네.

꽃나무들 심어서 잘 가꾸었는데

왜 이리도 오갈들이 걷히지 않나.

잘 살아야 할터인데 왜 이러냐고

누구도 이렇게 말하지 말라.

그 행실을 비석에 새겨 두노니

보는 이들 옛날처럼 전하여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