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휘 덕부 행적 |
1683년(숙종 9)∼1739년(영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후경(厚卿). 관찰사 만웅(萬雄)의 손자이며, 징하(徵夏)의 아들이다. 김창흡(金昌翕)의 사위로서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5년(영조 1) |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었다가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복상중 |
1728년(영조 4) |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총융사 장붕익(張鵬翼)의 종사관으로 기복(起復)하여 반란군의 장수 이배(李培)를 잡아 난을 평정한 공을 세웠다. 이에 영의정 홍치중(洪致中)의 천거를 받아 북평사(北評事)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
1732년(영조 8) |
지평을 거쳐 정언을 오랫동안 지내면서 탕평책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한때 이유신(李裕身)부자의 무고를 받았고 만년에 외직을 원하여 부안현감 등을 제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