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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공 휘 덕해 행적 |
서 기 |
나 이 |
조 선 |
약 보 |
1689 |
1 |
숙종 15년 11월 16일 |
감사공(監司公, 諱 徵明)의 차자(次子)로 출생. 자(字) 대중(大仲). |
1713 |
25 |
숙종 39년 |
증광시(增廣試)에 진사장원(進士壯元)합격. (복시(覆試)인 성균관 진사시(成均館 進士試). |
1715 |
27 |
숙종 41년 3월 2일 |
수(壽)27세로 별세 |
공께서는 천성형(文衡)자헌대부(資憲大夫)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내신 형(兄). 호(號)서당(西堂). 휘(諱)덕수(德壽)를 스승 삼아 학문을 배웠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훌륭하였으며, 문사(文詞)가 있어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벗들이 마음을 기울여 존경하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빛나는 학문과 재능을 세상에 펼쳐 보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27세의 나이에 조졸(早卒)하셨다.
한편 서당공(西堂公)께서 조졸한 동생과 아들을 생각하며 지은 다음과 같은 애절한 시(詩)가 있다.
“동생과 아들을 그리며 짓다”
동생 덕해는 이백 명 중 수석으로 합격하고
아들 산배는 청춘에 과거를 급제 하였더니
꽃다운 재주 아름다운 모습이 다 흙이 되고
해 저문 산골구석에 늙은 이몸만 남아있네
海也曾二百人 阿山庭擢亦靑春(해야증이백인 아산정탁역청춘)
英才美質爲土 歲暮窮村이 효성스럽고, 물욕이 없었으며, 얼굴을 붉히는 일은 있어도 화를 내는 일이 없었다. 겨우 11살에 아버님을 여의고, 문
老一身(영재미질위토 세모궁촌노일신)
자료 : 서당사재(西堂私載), 서당선생집(西堂先生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