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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공 휘 산배 행적 |
서 기 |
나 이 |
조 선 |
약 보 |
1703 |
1 |
숙종 29년 8월 22일 |
서당공(西堂公, 諱 德壽)의 자(子)로 출생. 자(字) 사인(士寅) |
1730 |
28 |
영조 6년 |
정시문과(庭試文科)급제 |
1732 |
30 |
영조 8년 2월 27일 |
수(壽)30세로 별세 |
공께서 대과(大科)에 급제하고도 벼슬에 뜻이 없어 출사(出仕)하지 않으므로 왕(英祖)명으로 조정(朝廷)에 입시(入侍)하게 하니, 제사민첩(諸事敏捷)하고, 달필기주(達筆記注)함을 왕께서 누차 목격하였다. 이에 왕께서 공이 조졸(早卒)함에 그 재능을 애석차탄(哀惜嗟歎)하고, 증(贈)홍문관(弘文館)부수찬(副修撰)직을 제수하였다.
한편 자헌대부(資憲大夫)이조판서(吏曹判書)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내신 그의 아버님께서 아들 묘소를 돌아보며 지은 다음과 같은 애절한 시(詩)가 있다.
“아들(李山培)의 묘를 돌아보며 짓다”
내 나이 육십이요, 네 나이 삼십인데
부자간의 깊은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니
아직도 산사에 책 읽으러 간 것 같은데
한줌 흙이 되어서 내 눈앞에 있단 말이냐
吾年六十汝三十 父子深緣至此窮(오년육십여삼십 부자심연지차궁)
猶疑山寺携書去 坏土胡然在眼中(유의산사휴서거 배토호연재안중)
자료 : 서당사재(西堂私載), 서당선생집(西堂先生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