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국운이 크게 열려 삼한을 통합할 때 전의이씨의 비조 되시는 휘 도(棹)께서 태조의 남정을 도와 금강에 이르렀을 때 마침 큰 비가 와서 강물이 범람할새 태조의 남정군을 호섭(護涉)하여 강을 건너게 한 공으로 개국익찬공신에 봉하여지고 벼슬이 삼중대광태사에 이르니 이로부터 전의이씨는 대대로 높은 벼슬이 이어지고 번창하여 끝내 대종을 이루고 해동의 큰 종족이 되었다.

 

2세 휘 강(康)이오 정용위 대장군(精勇衛大將軍)이며 3세는 휘 수영(秀英)이오 병부 상서이며 4세는 휘 문경(文景)이오 천우위 대장군이며 5세는 휘 윤관(允寬)이오 형부 시랑이며 6세는 휘 순(順)이오 보승별장(保勝別將)이며 7세는 휘 천(仟)이오 호는 동암수(東巖)로 정헌대부(正憲大夫) 응양군 대장군 지예부사(知禮部事) 중서 시중(中書侍中) 문하평장사인데 그 배위인 부부인 경주김씨는 평장사 기손(起孫)의 따님이오 부부인 천령장씨(川寧張氏)는 중랑장 인기(仁起)의 따님이다. 공은 세 아들을 낳으니 맏아들은 대사성(大司成) 휘 자원(子)이오 둘째는 시호가 문장(文莊)이오 휘 혼이고 공은 그 셋째이니 공의 휘는 자화(子華)이다. 고종 을묘년(1255)에 낳으시고 원종조에 통헌대부 지밀직사사 선부(選部) 전서(典書) 상호군에 이르니 문무를 겸전하고 성품이 본래 관후하며 공직ㆍ청명하여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 충을 다하고 부모를 섬김에는 효를 다하며 형제간에 우애있어 베개를 나란히 하고 한 집안에 같이 살면서 형들을 공경하여 우애가 더욱 돈독하니 고인의 형을 받드는 도리에 견줄만 하더라.

 

충렬왕 때에 혼(混)의 아우 자화를 행수(行首)로 삼고자 하였으나 혼이 사양하여 받지 아니하고 공 또한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니 청백한 행실이 있고 명리를 탐하지 아니하며 군자가 처세함에 겸양하는 숙덕(宿德)이 있어 헛되이 그 이름을 나타내고자 하지 아니하더라. 그러나 자루속에 있는 송곳은 끝내 그 끝이 밖으로 나타나는 법이니 그 영특함이 세상에 알려지고 형제가 서로 경계하여 조상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빛나는 행실을 지켜 나감으로써 백세토록 변함이 없더라.

 

배 군부인(郡夫人) 영산신씨(靈山辛氏)는 좌랑 좌선(佐宣)의 딸이다.

 

오호라!

여러 차례 난리를 겪어서 공의 행적을 가록한 문헌이 오늘에 전하여짐이 많지 아니하며 묘 또한 실전하였으니 옛날 법도를 좇아 전의현 태사공 묘소아래 청룡등(靑龍嶝)에 설단하고 세일사(歲一祀)를 봉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후손이 번창하여 명공거경(名公巨卿)이 울연히 서로 이어지니 공의 적덕여음(積德餘蔭)이 오늘까지도 남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4남 4녀를 낳으니 큰아들 언영(彦榮)은 삼사 좌윤(三司左尹)이요 다음 승영(承榮)은 감찰 규정(監察糾正)에 후사가 없고 다음 득영(得榮)은 봉상대부(奉常大夫) 전법(典法) 총랑(摠郞) 대광문하평리(大匡門下評理) 상호군(上護軍)인데 문화 유씨(文化柳氏)에 장가들었으며 다음 언재(彦材)는 내부령(內部令)이요 맏딸은 전법좌랑(典法佐郞) 백문우(白文佑)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부사(副使) 김계초(金繼貂)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제학(提學) 김우류(金右熊)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밀직(密直) 박정(朴精)에게 시깁갔다. 손자 도손(道孫)은 총랑(摠郞)에 후사가 없고 구직(丘直)은 조선조에 들어와 1395년 8월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훈되니 그 녹권이 오늘에 보존되고 있으며 벼슬이 자헌대부 의정부 참찬 호조 전서에 이르렀으며 배위는 낙안김씨(樂安金氏)이다. 사직(師直)은 직문하성(直門下省) 대호군(大護軍)이오 선경(先慶)은 정용위낭장(精鎔衛郎將)이다. 증손(曾孫) 정간(貞幹)은 자헌대부 중추원사로 시호가 효정(孝靖)인데 전서공(典書公)께서 일찍 돌아가시어 편모를 모시느라 벼슬에 나가지 아니하다가 늦게 강원도 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에 취임하여 임기전에 벼슬을 사임하고 송천별서(松泉別墅)에 내려와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님을 받들고 색동옷을 입고 노래자(老萊子)의 춤을 추어 어머니를 즐겁게 하니 세종이 이를 가상히 여겨 벼슬의 차례를 초월하여 자헌대부 중추원사를 제수하시고 그 어머니에게 정대부인(貞大夫人)의 봉작을 내렸으며「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의 어필 8자(字)와 궤장(杖)과 아울러 주악(酒樂)을 하사하니 그 영광이 비할데 없더라. 명공거경이 구름처럼 모여 들어 공의 집안의 영광을 칭송하고 시를 지어 바치니 그 시를 모은 경수집(慶壽集)이 간행되어 세상에 행하여지도다. 이 어찌 한 집안의 경사에 그치며, 어찌 위대하지 아니하며, 어찌 부럽지 아니하랴.

 

진간(珍幹)은 태묘(太廟) 서령(署令)에 홍문관 부제학으로 증 예조 판서요 양간(良幹)은 내섬(內贍) 소윤(小尹)이요 문간(文幹)은 조봉대부 군기시 부정이오 고(股)는 호군(護軍)이오 양성(養性)은 길주 목사 이다.

 

현손으로는 사흠(士欽)은 충좌위(忠佐衛) 대호군(大護軍)이오 사관(士寬)은 한성 부윤으로 증영의정 전성부원군(全城府院君)이오 사신(士信)은 첨지중추요 사민(士敏)은 철원 부사 증 병조 판서요 사혜(士惠)는 절의로 봉렬대부(奉列大夫) 영암 군수이니 절행이 있고 우반(于潘)은 능직(陵直)이오 지하(之厦)는 사직(司直)이오 계손(季孫)은 영해 부사에 증 병조 참판 이오 후신(候信)은 봉례(奉禮)요 수인(守仁)은 남해 현감이오 겸인(兼仁)은 단성 현감이다.

 

그 밖에 후손으로서 두드러진 사람으로 의장(義長)은 현감이요 예장(禮長)은 전성군(全城君)으로 시호는 평간(平簡)이오 함장(長)은 예조 참판이오 효장(孝長)은 관찰사요 서장(恕長)은 전성군(全城君)으로 시호는 양간(襄簡)이오 승존(承尊)은 직장에 절행이 있고 병정(秉正)은 시호는 양호(襄胡)요 효석(孝碩)은 증 좌윤에 행절이 있고 의석(義碩)은 판관(判官)에 절행이 있고 세분(世芬)은 판사(判事)요 덕량(德良)은 전성군(全城君) 시호는 장경(莊敬)인데 명신(名臣)이요 수남(壽男)은 전산군(全山君)으로 시호는 양간(良簡)이오 문경(文卿)은 직장이오 한원(翰元)은 전성군(全城君)이오 과(顆)는 대사성(大司成)이오 제신(濟臣)은 북병사 증 영의정에 청백 명신이오 영길(英吉)은 진사에 학행이 있고 기옥(璣玉)은 참봉에 학행이 있고 산립(山立)은 증 이조 판서요 수준(壽俊)은 증 영의정에 효행이 있고 명준(命俊)은 증좌찬성 청백리(淸白吏)이오 항길(恒吉)은 참봉에 학행이 있고 기(耆)는 강원 도사요 지영(之英)은 북평사요 지화(之華)는 병조 참의요 현문(顯門)은 증 지평이오 윤(玧)은 학행이 있고 섬(暹)은 사과에 절행이 있고 행원(行遠)은 우의정에 시호는 효정(孝貞)이오 정겸(廷謙)은 이조 참판이오 천상(天相)은 학행이 있고 익필(益馝)은 시호는 양무(襄武)요 홍제(弘濟)는 장령으로 행절이 있고 동필(東弼)은 효행이 있으며 인수(仁壽)와 사륜(師倫)은 동중추(同中樞)요 덕수(德壽)는 양관 대재학이오 덕윤(德胤)과 운식(雲植)은 증 이조 참의요 익회(翊會)는 예조 판서에 시호는 문간(文簡)이요 기회(箕會)는 증 이조 참판이오 의즙(義楫)은 효행이 있고 정민(正敏)은 학행이 있고 흥민(興敏)은 이조 판서요 현서(玄緖)는 예조 판서요 황민(璜敏)은 돈령 부사요 근우(根友)는 시호는 효정(孝貞)이오 근명(根命)은 의정(議政)이오 종기(種杞)는 금부 도사요 희로(僖魯)는 예조 판서요 정로(正魯)는 이조 판서요 규세는 절행이 있고 풍세(豊世)는 종사로 순직하고 종만(鍾萬)은 절행이 있다.

 

생각건대 공이 큰 덕을 베풀고 그 여음(餘蔭)이 만대에 까지 흘렀으니 자손이 번창하고 문호가 번영할 것이로다. 이제 신도비를 세우고자 나에게 그 비문을 청하여 오니 공의 총명하고 민첩한 생애가 많고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었겠지만 오랜 세월에 보존된 전적이 드물어 일부 기록에 남아있는 사실만을 근거로 하여 이에 적고 이어서 명(銘)을 적으니 가로되,

 

고려의 국운이 회태하여 삼한을 통합할새

태사공은 여조 남정에

금강물을 보호하여 건너게 하였고

개국원훈으로 작을 받고 벼슬을 받으니

이어 대대로 문무백관이 이어지도다

공은 성품이 민첩하고 심성이 관후하여

능히 글을 잘하고 세상을 조용히 정관하도다

형제간 우애가 돈독하고

임금이 주는 벼슬을 받지 아니하여 스스로 청백을 지키고

왕명을 받아 백성을 교화하였으며

군기를 화립하여 나라의 기틀을 반석위에 올려 놓았더라

양한(良閑) 영역에 추원단을 만들었고

이에 비석을 세워 길이 전하니

후손이 우러러 흠모하는구나

 

단기4324년 신미 초여름에 성균관장 김경수(金敬洙) 삼가짓고

성균관 전례위원장 강정희(姜正熙) 삼가 전자를 쓰고

20대손(代孫) 징로(徵魯) 삼가쓰다

 

 

 

高麗國運大開○統合三韓之時○全義李氏鼻祖諱棹○佐太祖南征時値大雨○錦江水漲○護涉有功○封開國翊贊功臣○三重大匡○太師全山候○諡聖節公○自此○子姓繼美聯輝○承世繁衍○遂成大宗○海東望族○二世諱康○精勇衛大將軍○三世諱秀英○兵部尙書○四世諱文景○千牛衛大將軍○五世諱允寬○刑部侍郞○六世諱順○保勝別將○七世諱仟○號東巖璟○正憲大夫○鷹揚軍大將軍○知禮部事○中書侍中門下平章事○平章事之配○府夫人慶州金氏○父平章事起孫○府夫人川寧張氏○父中郞將仁紀○是生有三○長大司成公諱子峰○仲文莊公諱混○公卽季也諱子華○高宗乙卯生○元宗朝始仕○通憲大夫○知密直司事○選部典書○又於上護軍○文武兼全○性本寬厚○公直淸廉以忠事君○以孝根天○友弟恭○一室同窕○連襟長枕○承順伯仲○敬愛尤篤○可比古人○奉兄之道哉○忠烈王時○混弟子華○欲爲行首○混辭不受○公亦不肯○淸白行儉○不慾名利○君子處世○謙讓宿德○不顯其名○囊錐見末○兄弟相戒○承襲先訓○赫赫家行○百世不斬○配郡夫人靈山辛氏○佐郞佐宣女也○噫累經世難○文獻不得○墓亦未詳○式遵古制○設壇於全義縣○太師公兆下靑龍嶝○歲薦一祀○積有餘年○後孫蕃昌○名公巨卿○蔚然相望○有若餘蔭尙存可徵矣○有男四女四○男彦榮○三司左尹○次承榮○監察正無傳○得榮奉常大夫○典法摠郞○大匡門下評理○上護軍○彦材○內部令○女壻○典法佐郞○白文佑○副使金繼貂○提學金右熊○密直朴精○孫曰道孫○摠郞無傳○丘直始入朝鮮朝○開國原從功臣○太祖四年八月勅詔王旨○錄券保存○資憲大夫○贊議政府○戶曹典書○配樂安金氏也○師直○直門下省○大護軍○先慶○精勇衛郞將○曾孫曰貞幹○資憲大夫○中樞院使○諡孝靖○典書早世○侍奉偏慈○終是專念○累徵不趨○晩來不得巳就任○江原都觀察使○瓜滿以前○卦印憫下鄕松泉別墅○奉母旨○不作代人○細細稟告○八十老齡○彩舞斑衣○如戱老萊○英廟嘉尙○超陞爵秩○恩封其母貞大夫人○家傳忠孝世守仁敬○御筆八字○免杖酒樂○遣禮下賜○榮光無比○名卿賀客○盛筵成韻○詩曰慶壽○刊行于世○此豈非但一門之慶○豈不偉哉○豈不羨哉○珍幹○太廟署令○弘文館副提學○贈禮曹判書○良幹○內贍小尹○文幹朝奉大夫○軍器寺副正股護軍○養性吉州牧使玄孫曰士欽○忠佐衛大護軍○士寬漢城府尹○贈領議政全城府院君○士信○僉知中樞○士敏鐵原府使贈兵曹判書○士惠節義奉列大夫靈岩郡守○于潘陵直○之厦司直○季孫○寧海府使○贈兵曹判○候信奉禮○守仁○南海縣監○兼仁○丹城縣監○後孫之顯名者曰義長○縣監○禮長○功臣諡平簡○牽長禮○孝長觀察使○恕長○功臣全城君○諡襄簡○承尊節義直長○秉正諡襄胡○孝碩節義贈左尹○義碩節義判官○世芬判事○德良名臣功臣○全義君諡莊敬○壽男功臣全山君諡良簡○文卿直長○翰元功臣全城君○顆大司成○濟臣淸白名臣贈領議政○英吉○學行進士○璣玉學行奉○山斗贈吏判○壽俊贈領議政孝行○命俊淸白○贈左贊成○恒吉學行奉○耆江原都事○之英北評事○之華兵議○顯門贈持平○玧學行暹節義司果○行遠右議政諡孝貞○廷謙吏○天相學行○益馝功臣諡襄武○弘濟節義掌令○東弼孝行○仁壽同中樞○師倫同中樞○德壽兩館大提學○德胤贈吏議○雲植贈吏議○翊會禮判諡文簡○箕會贈吏○義楫孝行○正敏學行○興敏吏判○玄緖禮判○璜敏敦寧府事○根友諡孝貞○根命○議政○種杞○禁府○都事○僖魯○禮判○正魯吏判○奎世節義○豊世宗事殉職○鍾萬節義○偉哉惟公垂蔭○大德流及萬代子孫昌盛○門戶繁榮○欲竪角碑○囑余請文○公之聰敏○生涯潛跡○所著文藻○必是盈筐○歲久月深○典籍遺漏末修補闕○宗會僉甫○細深探究○幸得考證一部○實事根據廻右○系之以銘曰○麗運○回泰○統合三韓○佐征南方○護涉激湍○開國功勳○封爵授官○繼世文武○蟬聯衣冠○公生天稟才敏○心寬能文成章○意 靜觀○敦睦友誼○昆季團欒○不受寵職○淸白自安○王命受傳○敎民乾乾○軍機確立○國基如盤○良閑○塋域○追遠設壇○立碑永傳○後昆仰觀○檀紀四三二四年辛未孟夏成均館長金敬洙謹撰

成均館典禮委員長姜正熙謹篆

二十代孫徵魯謹書